
June 17th, 2010 by

admin
Private Chorus
/ Yasuto Masumoto solo exhibition

■ 전시개요
•전시제목: Private Chorus / Yasuto Masumoto solo exhibition
•기 획: 류희정 (Chief Curator, Alternative Space Loop, Korea)
이세연 (Exhibition Coordinator, Alternative Space Loop, Korea)
•전시기간: 2010년 6월 19일 ~ 7월31일
•장 소: 대안공간 루프, 미디어 센터 3F
•주 최: 대안공간 루프
•주 관: 대안공간 루프
•후 원:CJ문화재단, 문화예술위원회, MIACA
•오프닝 리셉션: 2010년 6월 19일 5:00 PM
■ 전시글
‘오역(mistranslation)’의 가능성
다이스케 아와타 Daisuke AWATA (예술 비평가)
‘오역’의 가능성이란 무엇을 의미하는가? 소설가 요코 타와다(Yoko TAWADA)는 일어와 독일어 사이의 단어와, 내러티브를 통해 ‘오역’을 서술하였다. “‘오역’과 정확한 번역은 진실과 거짓처럼 상반된 것이 아니라, 그 모든 과정이 옮김이자 여정이다. 좀더 과장하면 오역이든 정확한 번역이든 그들은 단지 다양한 색의 농담을 가지고 있을 뿐이다.” 이러한 번역에 관한 새로운 사실이 비디오 매체에 반영되면서, 거짓-진실 사이의 경계는 픽션과 다큐멘터리의 영역으로 전이된다. 야스토 마스모토(Yasuto MASUMOTO)의 영상작업인 (2008-2009) 시리즈에서 ‘오역’에 의해 유발되는 사람들의 행동은, 허구와 다큐멘터리 사이의 양극 성으로 상이한 반향이 아니라, ‘색의 농담(shade of colour)’ 사이에 존재한다.
사람들은 자신의 모국어와는 완전히 다른 언어체계를 바탕으로 한 외국어로 된 레시피를 받았을 때 어떻게 행동할까? 에서 사람들은 요리를 하려고 시도하기는 하지만, 그들의 심리적-행동적 처리과정은 영어, 한국어, 아랍어로 된 레시피 때문에 멍해진다. (멍하게 바라보는 것은, 명상하는 것 과는 전혀 관련이 없다.) 이러한 맥락에서 살펴보면 마스모토의 영상은 다큐멘터리에 가깝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떠한 조정된 단계가 미리 포함이 되었다는 사실을 고려해볼 때, 그것은 엄격하게 다큐멘터리라고 하기는 어렵다. (외국어로 쓰여진 레시피를 건네는 것 자체가 어떠한 조작적 발판이 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에서 흥미로운 것은 한정된 다양성(무한과는 다름)이 결정(=레시피)과 자유(=오역) 사이에 존재 했던 이전의 판단을 바꾼다는 것이다. 쓰여진 레시피를 따라야 하는 동안, 목표와는 완전히 다른 예측 불가능한 행동을 하는 사람들의 태도 안에는 한정된 다양성이 내재되어 있다. (사람들의 행동이 가끔 우스꽝스러운 이유는, 다양성이 이미 확립된 부조화안에 존재하는 선행적 판단에서 변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촬영을 하는 쪽과 촬영을 받는 입장간의 어떠한 우세-종속관계는 이 영상이 픽션이건 다큐멘터리건 일반적으로 형성되는 것이다. (감독의 지위가 초월적인 형식을 유지하고 있는 것은 이 영상에서 상징적인 역할을 한다.) 이러한 주종간의 경계는 에서 완전히 허물어 진다. 이것은 마스모토 자신이 영상에 종종 나타나는 사실에서 더욱 명확해 진다. 작가가 단순하고 한정적인 주체가 되는 대신에, 심지어 자신의 존재 자체를 변화 가능한 변수의 하나로 간주한다. 이 변수는 ‘오역’으로부터 행위를 규정하며, 이를 통해 주체와 객체는 재결합된다.
‘번역’이라는 용어가 수학적인 평행적 이동이라는 뜻을 포함하고 있기는 하지만, ‘오역’의 행위는 이동 사이의 균열을 드러내 보인다. 번역의 불가라고 불리는 이 균열은, 마치 모국어와 외국어 사이에 피할 수 없이 도사리고 있는 무엇과도 같다. 이렇게 토폴로지 (topology: 위상기하학)로부터 떼어내지 못한 균열의 출현은, 비디오 매체의 끊임없는 변화를 표면화 시킨다. 균열의 출현은 결정과 자유 사이에 세포가 분열되는 것과도 같다. 어쩌면 이미 예정되어있을지도 모르는 이전의 결정들을 바꾸기 위한 새로운 창조성을 형성하면서, 우리의 눈은 에 고정된다.
번역 이세연 (Exhibition Coordinator, Alternative Space LOOP)

June 17th, 2010 by

admin
제 4회 회화모음전

I.전시정보
1. 전시 개요
•전시제목 : 제4회 회화모음전-<히스테리>
•기 획 : 류희정
•전시기간 : 2010년 6월 19일 ~ 7월31일
•장 소 : 대안공간 루프
•주 최 : 대안공간 루프
•후원: CJ 문화재단, 한국문화예술진흥위원회
2. 참여작가
•고등어 Mackerel safranski
•박정원 Jungwon PARK
•윤향로 Hyangro YOON
•오용석 Yongseok OH
•이정웅 Jeongwoong LEE
Ⅱ. 전시글
4회 회화모음 전 -<히스테리>
류희정 (대안공간 루프 큐레이터)
최근 논의되어 오고 있는 사회적 이슈에 대한 당신의 입장은 어떠십니까? 2010년 상반기가 지나가고 있다. 이쯤 해서 매스컴에서는 2010 상반기 베스트 뉴스를 정하느냐 분주 할 것 같다. 뉴스를 듣기 이전에 한번 예측해 보자. 당신이 생각하는 2010년 상반기의 베스트 뉴스 5는 무엇인지, 또 이를 결정하고 바라보는 당신의 태도는 어떠한지. 주의를 환기시키고, 이번에는 ‘2010 상반기 당신의 베스트 뉴스 5’는 무엇인지 생각해보자. 비록 이것이 뉴스에서 다루어질 확률은 거의 없지만 말이다. 자, 이제 두 개의 리스트를 놓고 비교해 보자. 공통항이 있는지, 양자 간의 관계를 어떠한지에 대해서 말이다. 물론 결과는 여러분의 몫이며 필자가 침범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다만 사회와 그 사회를 구성하고 있는 개인과의 관계에 대해서 한번쯤 생각해 보자는 의도로 던진 질문이다. 이러한 질문에 대한 대답은 다양한 문화적, 사회적 현상들을 통해서 살펴볼 수 있으며, 동시대 예술 또한 이를 나타나는 중요한 지표가 아닌가 생각한다. 최근 한국의 젊은 작가들에게서 나타나고 있는 특징 중의 하나가 바로 ‘비 사회성’, ‘개인적 취향’인 것을 보면 사회에 바라보고 참여하는 자세가 그리 적극적인 것만 같지는 않다. 사회라는 거대한 권력구조의 구성원으로서의 개인이 아닌, 개인의 입장에서 사회를 바라보고 참여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겠다. 이와 관련하여 일부에서는 한국의 젊은 작가들이 ‘비 소통적인’ 자기 만족성 작품을 제작하고 있다고 우려하는 목소리도 심심치 않게 들리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취향이 계속적으로 보여지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2008년 제 3회 회화모음전에서 ‘사적인 취향’을 캔버스에 나타난 결과물을 통해 보여주고자 했다면, 이번 제 4회 회화 모음전에서는 젊은 작가들이 이러한 ‘사적인 취향’ 혹은 ‘자아 퇴행적’인 요인에 초점을 두게 된 그 심리적 기제에 대해서 살펴보며, 이것이 어떻게 사회와 연관을 짓고 있는지 살펴보고자 한다. 이번 전시에 초대된 다섯 작가 고등어, 박정원, 오용석, 윤향로, 이정웅의 작품은 작가 개인의 심리적 외상으로 만들어진 상처를 작품으로 표출하는데, 주로 교란된 심리상태, 환상과 강박, 억압된 욕망과 충동을 히스테리컬하게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 주목했다. ‘히스테리’의 역사는 고대 그리스 시대로부터 시작되는데, 일반적으로 ‘어떤 사람이 히스테리컬하다’라는 말은 신체적으로 아무런 이상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어떤 상황에서 극적이거나 공격적인 태도로 돌변하거나 예민하게 반응하는 것을 말한다. 발생원인으로는 어떤 경험에서 비롯된 감정이 건강하게 발산되지 않고, 억압되었을 경우에 나타난다고 보고 있다. 이를 치료하기 위해 프로이트가 최면술을 통해 히스테리가 발생하게 된 상황을 그대로 연출하는 카타르시스 요법을 발견한다. 프로이트에 따르면, 만약 원래의 체험이 그 얽힌 감정과 함께 의식으로 불러일으켜질 수 있다면, 그 감정은 바로 그 사실로 인해 발산되거나 ‘소산’된다. 그리고 증상을 유지시켰던 힘은 작용이 중지되고 따라서 히스테리 증상자체가 사라진다는 것이다. 실제로 히스테리의 한 신체적 증상인 ‘거식증’을 경험한 고등어의 작업에는 남성과 여성의 권력 구조 나아가 이를 조정하는 또 다른 힘에 대해 자신의 무의식의 언어로 표현하고 있고, ‘백색 공포’라는 단어를 떠올리게 하는 오용석의 작업에는 은폐된 인간의 폭력과 공포 욕망이 나타난다. 어릴 적 트라우마로 인해 사건을 바라보는 가해자와 피해자의 시선의 교차점에 대해 이야기하는 윤향로, 헤어진 연인을 잊지 못하고 쿨하게 보내주지 못하는 멜랑콜리한 이정웅의 작업과 지극히 평범한 한국의 ‘아저씨’의 모습을 범죄인의 몽타주 형식으로 제작한 박정원의 작업에서 건강하게 ‘발산’되지 않는 억압된 기억들이 표출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굳이 힘들었던 개인적 경험을 작품에 표출하는 것은 왜 일까? 어찌 보면 이번 전시에 초대된 다섯 작가 모두 본인의 심리적 외상을 캔버스에 표출하면서 이를 극복하고자 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나아가 이와 유사한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작업을 통해 공감대를 형성하며 상처를 극복 할 수 있는 상황을 마련하는 것은 아닐까? 대단히 사회참여적인 작업은 아닐지라도, 이들이 소극적으로나마 사회와 소통하고 참여하고자 하는, 나아가 그 출구를 찾고 있는 것 같다. 개인적인 경험과 상처에서 출발했지만, 그들이 가지고 있는 상처는 다름아닌 우리가 가지고 있는 이야기이며 상처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