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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키현대미술 전
a different similarity: endgame
○ 개 요
• 전시 제목 : 터키현대미술전 (a different similarity: endgame)
• 기 획 : Pelin Uran, 김정연, 서진석
• 일 시 : 2009년 1월 8일 목요일 ~2009년 1월 28일 수요일
• 장 소 : 대안공간 루프 지하 1층, 지상 1층 전시장
• 주 최 : 대안공간 루프
• 후 원 : 한국문화예술위원회, 한국국제교류재단, 터키 외교부
• 홈페이지 전시 : 2008년 12월 23일~ 2009년 7월 30일,
• 오프닝 리셉션 : 2009년 1월 8일(목) 18:00
A Different Similarity: endgame
펠린 우란 (Pelin Uran, 독립 기획자)
알렉산더 가르시아 뒤트만 Alexander Garcia Düttmann 은 완전한 인식을 얻지 못해야만 재미나고 거리가 있으면서 고정되지 않는 관계들을 만들어낼 수 있다고 설명한다. 같은 나라에 거주하거나 혹은 같은 나라 출신 작가들로 전시를 조직한다면 어떻게 인식의 행위를 지연시키거나 차별화 할 수 있을까? 어떻게 우리는 매우 쉽게 받아들일 수 없는 위험적 요소를 무릅쓸 것인가? 전시 앤드게임 Endgame은 특정 주제에 구속되지 않는 방식으로 인식의 행위를 지연시킨다. 이번 전시에 소개되는 작품들은 한 국가에 귀속되는 통일된 컨텍스트를 구성하지 않기 때문에 전시 자체가 여러 가지 상황의 가능성들을 열어 놓는다. 관람객들이 통일체를 구성하는 부분들, 일관된 삶의 교정작용인 하나의 통일되고 의미 있는 컨텍스트를 기다리는 것은 헛수고가 될 것이다. ‘엔드게임’은 체스에서 차용한 용어로서 이번 전시에 구성적 영향을 미치는 메타포이다. 엔드게임이란 본래 게임을 구성하는 중간 과정과 달리 다양하고 다층적인 가능성이 존재하는 체스게임의 마지막 단계를 일컫는다. 엔드게임과 마찬가지로 이번 전시에서도 작은 과정과 세부들이 통일체보다 더 많은 의미를 지닌다는 것이다. 즉 잘 구성된 전시 작품과 계획되지 않거나 혹은 물리적으로 불완전한 구조적 유니트로 이루어진 작품을 한데 병치함으로써 실수나 우연적인 사건들이 예측불허의 움직임을 유발하게 된다. 따라서 두 개의 작품 사이의 대화는 더욱더 서로에게 의존적으로 바뀔 것이다. 시간성을 바탕으로 하는 퍼포먼스 또한 반전의 기술과 관련하는 만큼 일종의 엔드게임을 연상시킨다. 퍼포먼스 이후 남아있는 몇몇의 흔적만으로 이미 일어난 일을 충분히 해석할 수 없기 때문이다.
전시 참여 작가들의 작업 방식과 미술에 대한 접근 방식은 각기 다른 시각들과 소통하거나 혹는 각기 다른 방식으로 여러 시각과 소통한다. 어떠한 예술적 개입이 (인식과 표현의 방법인) 가시 대상을 조절함으로써 정치적이게 된다면 그 작품은 가장 명백하고 가시적인 정치적 측면은 물론 더욱 미묘하고 비가시적인 요소 또한 드러내는 것을 추구한다. 엠레 후네 Emre Huner의 11분짜리 비디오 애니메이션인 <원형교도소 Panoptikon 2005>는 건축, 자연, 산업화, 모더니티, 또한 모더니티에 대한 불안과 인간과의 관계에서 출발한 작품으로서 작가는 애니메이션을 작품의 재료로 이용한다. 사물들의 기록이 선형적인 논리와 관련하여 꿈같이 전개될 때 관람객은 소위 합리주의적 근대사회의 발전상, 즉 근대 과학의 진화, 근대 군사 기계, 근대건축의 미학을 학습하도록 이끌린다. 후네가 모더니티의 불안에 초점을 맞추는 반면 알리 카즈마 Ali Kazma의 비디오 연작인 <장애물Obstructions, 2005-2008> 은 일상에서 간과되는 사물들, 즉 가전제품이나 철제 용품, 단순한 시계 등의 제조과정 안으로 관람객을 끌어 들인다. 이 비디오 작품은 인간의 필요에 따라 조직되는 질서를 지켜 본다. 카즈마의 작품에서 재구성되는 이 인간의 필요성이란 육체노동에서는 물론 예술과 과학에서도 마찬가지로 발견된다. 작품 속에서 창조적인 노동과 미숙련의 육체노동을 병치함으로써 이 같은 행위들을 재구성한다. 이미지의 불확실성과 모호함에 관심이 있는 바누 젠네트올루 Banu Cennetoglu는 순간적이거나 불안정한 공간 사진을 찍고 그 공간에 내제하는 잠재적 불확실성에 대하여 의문을 제기한다. 그 모호한 분위기는 젠네트올루의 설치작업 안에서 증폭되는데 그녀의 작품 <역기능적으로-감상적인 Dysfunctional-ly Sentimental 2008> 은 라이트 박스 형태의 공간 안에 사진 한 장을 설치한 것이다. 공간 속의 명료한 냉기와 사진의 잠재적인 모호성 사이에서 생겨나는 대비를 통하여 작가는 섬세하면서도 동시에 심층적인 긴장 상황을 작품 속에 도입하고 있다. 이실 에이리카부크 Isil Egrikavuk의 작업은 퍼포먼스를 통해서 일상 생활에 기초한 정보들을 언어학적이고 시각적으로 해체, 질문, 재구성하는데 근거하고 있다. 그리고 픽션과 현실의 경계를 흐리기도 한다. 그녀의 퍼포먼스 <토론단 Panel 2005>은 전시장을 세미나 룸으로 탈바꿈시키고 그곳에서 미술계의 다양한 직업을 가진 다섯 명의 참여자들에게 스크립트에 기초한 토론을 시키는 작품이다. 작가가 쓴 스크립트는 약간의 즉흥적인 요소를 허락한다. 에이리카부크의 수행적 제스처는 예술가 공동체 하 자 부 주 ha za vu zu의 작업방식과 매우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하 자 부 주는 어떠한 상황을 설정함으로써 고유의 표현 방식을 창조하는데 여기서 상황이란 논증적인 언어 요소들을 제거하고 기본적인 소통 행위를 반영하는 것을 의미한다. 퍼포먼스 <What a Loop >에서 그들은 영화의 한 상황을 퍼포먼스로 재연하는데 이들은 지난 1년간 여러 곳에서 행한 이 퍼포먼스를 계속 기록해오고 있다. 아슬리 순구 Asli Sungu의 비디오 작품은 개인에게 투사되는 타인의 기대에 대한 섬세한 비평이다. 타인으로부터 오는 지나친 부담을 보여주고자 작가는 내면의 자아로부터 출발한다. 그녀는 보통 자기 작품의 주인공으로 등장하며 실망스러운 경험들을 참아낸다. 4개의 비디오 설치 작품 <결점 Faulty 2008> 은 끊임없이 잘못을 지적하는 전문가들 앞에서 작가가 직접 일상의 일을 실행하는 상황을 만들어 개인의 취약성을 드러내고 있다. 마지막으로 아슬리 차부숄루 Asli Cavusoglu의 <부루스 채트윈을 이어 파타고니아에서 In Patagonia after Bruce Chatwin>은 작가가 1977년 부루스 채트윈의 파타고니아 여행을 재연하고 그에 기초하여 제작한 책 작업이다. 차부숄루는 채트윈의 안내서를 따르고 있지만 작가 자신이 우연한 상황 속에 처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 놓는다. 그러한 과정 속에서 여행 문학이란 제국주의자 성향의 선진국 여행자들이 만들어놓은 것이라는 사실을 강조하기 위하여 작가는 자신의 경험을 만들어 간다.
프로젝트의 부작용은 인식과 새로운 질문의 공간을 열게끔 한다. 즉 예술 행위란 부작용을 여느 과정의 긍정적인 부분으로 간주할 수 있는 인간 고유의 활동이다. 따라서 주제전시와 달리 엔드게임이라는 메타포를 전시의 구조로 이용하는 방식이 관람자들에게 이해와 지식은 물론 오해와 오역을 전달하기도 하지만 일반적으로 오해와 오역이란 어떤 과정에서도 당연히 발생하는 본질적인 것이기도 하다. 나아가 통제되지 않는 여지, 예측불가능성, 모호성, 비결정성이 도입되는 것을 가능하게 하기도 한다. 불행하게도 논증적인 시각에서 볼 때 이 전시의 성공을 기대하는 것은 불가능할 것이다. 왜냐하면 필요한 기대치를 종용하면 할수록 그 기대하는 바가 실현되었을 때 생기는 실망이라는 위험성 또한 더욱 커지기 때문이다. 기대치의 충족은 그 기대를 구성하고 있는 긴장감을 희석시키기 때문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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