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RRENT


 

 


 

명랑하게_ spray paint on camouflage pattern canvas_117x73cm_2014
 

밝은사회_spray paint on camouflage pattern canvas_41x23cm_2014

 

예술중흥_spray paint on camouflage pattern canvas_41x23cm_2014

 

먹방Mukbang_ Acrylic on canvas_300x240cm_2014
 

디어 리더스Dear Leaders_Acrylic on canvas_91x73cm(each)_2017
사랑의 처녀상Statue of Love_FRP_150x90cm_2017
 

Three National Flags_Digital Print on Canvas_4.5x9m_2017
 

상호침투-안된다Mutant Penetration-No_oil on canvas_91x73cm_2013
 

상호침투Mutant Penetration(Navy)_oil on canvas_100x80cm_2012
 

상호침투Mutant Penetration(Nurse)_oil on canvas_100x80cm_2012
 

상호침투-지식인Mutant Penetration-Intelligentzia_oil on canvas_91x73cm_2013
 

상호침투Mutant Penetration(Soldier)_oil on canvas_100x80cm_2012
 

열사시리즈Patiot series02_이한열 썩소 Lee Han-yeol with a rotten smile_ spray paint, acrylic on canvas_194x154cm_2014
 


팝아트투어_박정희대통령생가, 구미_2013
 

Nation to Nature_single channel video_2hours_2016
 

 

강영민 개인전_금지된 사랑 Exiled Love

 

2017.11.03 ~ 12.17

오프닝 : 2017년 11월 3일(금) 오후 6시
기획 : 대안공간 루프
주최/주관 : 대안공간 루프
후원 : 서울문화재단

** 아티스트 토크
주제: 탈정치 시대의 정치적 예술
일시: 11월 25일(토) PM 2:00
장소: 대안공간 루프
발제자: 이택광 (문화비평가, 경희대학교 교수), 최범 (미술, 디자인 평론가), 강영민 (작가)
진행: 이선미 (대안공간 루프 큐레이터)

 


 
 

** 작가소개
강영민은(b. 1972) 캐릭터를 이용한 다양한 작업을 해온 팝아티스트이자 화가이다. 그의 대표적인 캐릭 터 <조는 하트Sleeping Heart>는 하트 모양의 얼굴에 무언가를 음미하는 표정을 짓고 있다. 작가는 하 트라는 보편적이고 몰개성적인 소재를 통해 관객 각자가 다른 스토리로 감정이입하고, 일상의 비밀스럽고 사적인 순간들을 되돌아보게 되기를 원한다.

강영민은 <조는 하트, 인사미술공간, 서울, 2004>, <사랑하면진다, 가나아트갤러리, 서울, 2008>, <국가와 혁명과 너, 코너아트스페이스, 서울, 2013> 등의 개인전을 개최했고, <미디어시티서울>, <광주비엔날
레>, <덤보아트페스티벌, 뉴욕> 등 주요 전시에 참가했다. 현대백화점, 캐딜락, 뵈브클리코, DKNY, KUHO, 베이직하우스와 함께 아트워크를 진행했으며, 월드비전과 서울문화재단의 ‘사랑의 동전밭’ 프로젝트에 아트디렉터로 참여했다. 현재 전국을 유랑하며 회화, 설치, 영상 등의 다양한 매체를 통해 대중소비문화와 자본주의에 대해 기록하고있다.

** 금지된 사랑, 강영민

강영민은 1999년 대안공간 루프의 개관 당시 큐레이터로 활동하면서, 블랙 유머를 담은 캐릭터로 제 시대적 상황을 표현한 작업들을 진행했다. <배고픈 돼지>, <거만한 거지>, <나대로씨>, <국물튀김>과 같은 작가의 캐릭터들은 팝아트적인 컬러풀한 작업들이었다. 2004년 첫 개인전에서 <조는 하트>, <엉엉 하트>, <쿨쿨 하트>, <깨는 하트>, <해골 하트> 등 풍자적인 시각으로 보편적인 아이콘인 하트를 다룬 회화, 설치와 플래쉬 애니메이션 작업을 소개했다. <조는 하트>는 뵈브 클리코, DKNY 등 다양한 상품들과 콜라보레이션을 가능케 했고, 이후 강영민은 전시기획 뿐만 아니라 애니메이션 제작, 음반 제작, 파티 기획, 브랜드 런칭 행사의 아트디렉팅 등 예술과 비예술 사이를 넘나드는 활동을 진행했다.

2005년 <내셔널 플래그>라는 세번째 개인전에서 강영민은 태극기의 태극 부분을 하트로 바꾸고 의인화한 캐릭터를 소개했다. 작가는 웃거나 졸거나 또는 눈물을 흘리거나 입맛을 다시는 등 다양한 표정을 한 태극기들을 갤러리 벽에 높이 걸어 관객들이 고개를 들고 전시를 관람하게 했다. 당시 강영민은 이 전시를 <인고의 역사를 겪었지만 사랑을 잃지 않은 우리민족을 표현했다>고 말했다.

마릴린 맨슨을 닮았다는 이유로 이명박을 찍으려 했다는 강영민의 유머러스하면서 순진하기까지 했던 시대의식은 MB의 시대를 지나 2012년 박근혜의 대통령 당선을 계기로 큰 변화를 겪는다. <한 집에 내가 전혀 모르는 다른 사람이 살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한 인터뷰에서 밝히며, 강영민은 자신이 살고 있는 한국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박정희와 박근혜를 알아야 함을 깨닫는다.

2013년 4월부터 강영민은 디자인 평론가 최범과 함께 <박정희와 팝아트투어>를 시작으로 매달 한국 현대사를 돌아보는 팝아트투어를 진행했다. 2014년 8월까지 박정희 기념관, 5.18과 팝아트투어(광주 민주화묘지, 메이홀, 광주시립미술관), 주한미군과 팝아트투어 (동두천 미군기지 캠프 데이비스), 안중근과 팝아트투어 (안중근 의사 기념관), 전태일과 팝아트투어 (동대문 평화시장) 등 전국을 다니며 한국의 근현대사를 연구했다. 2013년 7월 개인전 <국가와 혁명과 너>에서는 박근혜와 체 게바라를 합성한 회화 작품 <박게바라>와 함께 박정희의 휘호들을 작업의 소재로 삼는다. 강영민은 <박통의 ‘말씀’들이 근대 대한민국을 만들었다. 그러나 그 말씀들을 실현하려고 노력하거나 저항한 사람들이 없었다면 오늘의 대한민국은 없었을 것이다. 그들의 피와 땀을 붉은 색으로 표현했다>고 말했다.

팝아트가 대중에 관한 예술이라면, 강영민은 한국의 대중을 예술 안에서 어떻게 재현할 것인가에 대해고민하고 있다. 대중이라는 주체를 재현하는 한가지 방식은 그 대리물, 즉 소비의 대상들이나 사회적 관심을 끄는 상황들을 통해서다. 예를 들면 태극기 집회와 같이 대중들의 문화가 하위문화로 전도되는 현상을 작가는 재전유한다. 이는 기존 자유주의자들이 태극기 집회를 배제해야 할 대상이나 투명인간으로 취급하는 태도와는 분명 다르다. 역설적으로 이는 박정희라는 파시즘을 예술적으로 전유하고자 하는 작가의 충동과 유사하다.

이번 전시에서 강영민은 <소셜팝>에서 더 나아가 대중문화 속 이미지와 박정희, 박근혜, 김정은, 북한의 포스터를 뒤섞는다. 예술적 표상이란 지배계급의 이데올로기적 이해관계가 거울에 비친 이미지라고 한다면, 강영민의 작업들은 단순히 부르주아지의 욕망을 뚜렷하게 드러내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작가는 예술과 이데올로기 사이의 매개의 문제를 뒤틀고 자극한다. 이는 대중문화에서 저항과 위반에서 시작하여 산업화된 문화 변용을 겪고, 결국 상품에 이르게 되는 과정과 유사하다.

강영민은 부르주아 미학 이데올로기에서 이질적인 금기 요소들, 특히 파시즘적인 주체들이나 하위 문화를 현대 미술 안에서 충돌시키고자 한다. 이 곳에서 금지된 쾌락은, 그리고 금지된 사랑은 그 주체를 드러낸다. 이는 자유주의와 자유주의 바깥의 규범적이지 않은 공간을 생성하고자 하는 작가적 욕망의 구현이다.

양지윤

** 비교양, 비장소, 비합일하는 주체: 팝아트 투어

올여름 페이스북은 베네치아, 카셀, 뮌스터로의 여행 사진으로 넘쳐났다. 여기에 요코하마 트리엔날레까지 추가되면 그랜드 슬램이 달성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그랜드 투어이다. 오늘날의 어학연수와 교환학생, 배낭여행 등은 모두 그랜드 투어의 후예들이라고 할 수 있다. 서구의 미술대학에 유학하고 세계 유수의 비엔날레에 출품하는 것은 오늘날 한국 미술가들의 공통된 꿈이다. 우리는 모두 18세기 교양인의 후예를 꿈꾸는 것이다. 그런가 하면 다른 한편에서는 박정희 시절부터 유래하는 ‘국토순례단’과 해병대 극기 캠프가 인기를 끌고 있다. 해외 유학이 오늘날의 그랜드 투어라면 국토순례단과 해병대 극기 캠프는 반더포겔이라고 할 수 있다.

팝아트 투어는 그랜드 투어도, 반더포겔도 아닌 전혀 다른 주체의 테크놀로지를 추구한다. 그것은 유사 낭만주의로서의 여행과 국토 사랑으로서의 여행을 거부한다. 그런 점에서 팝아트 투어는 낭만주의적 주체와 전체주의적 주체를 교란시킨다. 예컨대 박정희의 국토순례단이든 민중미술의 풍경화이든, 비록 그것들이 서로 다른 역사관에서 출발한 것이라 할지라도 모두 대지와의 합일을 추구한다는 점에서 보면 공통된다. 그렇게 보면 국토순례단과 민중미술 사이의 거리를 그리 멀지 않다. 하지만 팝아트 투어는 대지와 주체의 합일을 추구하지 않는다. 팝아트 투어는 그랜드 투어의 낭만화된 여행과 국토순례단 또는 민중미술의 민족주의적인 훈육을 모두 거부한다. 대신에 이 땅이, 우리 자신을 포함하여 얼마나 많은 낯선 타자들의 공간이었는지를 확인하고자 한다. 팝아트 투어는 유토피아가 아니라 헤테로피아를 찾아간다. 그것은 한국 현대사에 대한 비판적인 재해독이다.

그래서 모든 주체들이 대지에 자국을 남기고자 할 때 팝아트 투어는 ‘낯설게 보기’를 선택한다. 이곳은 나의 땅이 아니다. 그런 점에서 기본적으로 동일시에서 벗어나고자 한다. 그것은 장소를 비장소화하고, 장소와 동일시하는 주체를 해체하고자 한다. 팝아트 투어는 자연과 주체를 동일시하지 않으며, 위대한 대지의 어머니로부터 솟아나는 민중의 신화를 낯설게 바라본다. 팝아트 투어의 주체는 스스로 주체임을 의심하는 주체이다.

그런 점에서 팝아트 투어는 그랜드 투어도 반더포겔도 아닌, 그 어떤 여행 서사로도 환원되지 않는 주변적이고 낯선 여행이라고 할 수 있다. 팝아트 투어는 주체를 정박할 곳을 찾기 위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돌아와야 할 곳도 없고 떠나서 찾아야 할 자신도 없다. 팝아트 투어는 나 자신이 철저히 낯선 자임을 확인하기 위한 여정일 뿐이다. 그래서 이 땅은 왈칵 끌어안고 뜨거운 입맞춤을 해야 할 신성한 조국이 아니라 낯설고 차갑고 혼란스러운 공간일 뿐이다.

팝아트 투어도 어떤 면에서는 일종의 교양여행이지만 그것은 전리품을 가지고 돌아오지 않는다는 점에서 사실은 결코 돌아오는 법이 없는 여행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그것은 ‘땅 밟기’가 아니라 일종의 ‘땅 잃기’이다. 그래서 그것은 다크 투어리즘일 수도 있는데, 정확하게 말하면 다크가 아니라 림보의 세계에 더 가깝다고 할 수 있다. 림보, 그 중음신(中陰身) 의 세계는 밝지도 어둡지도 않은 모호하면서도 불투명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팝아트 투어는 유사 낭만주의적 주체와 전체주의적 주체의 죽음 위에서 새로운 주체의 탄생을 기다리는 시간 여행이기도 하다.

최범, <여행과 예술: 주체의 테크놀로지> 중에서

** 정치시대의 정치작가 – 정치의 위치에 대한 집요한 질문

여덟 번째 강영민 개인전이 보여주고자 하는 것을 한마디로 정의하자면 “정치의 장소”일 것이다. ‘일베 사태*’ 이후에 강영민은 꾸준히 정치의 문제를 제기해온 흥미로운 작가였고, 이번 개인전은 그 동안 발전시켜온 작가의 생각들을 확인할 수 있는 자리이기도 했다. 한국에서 이렇게 정치라는 문제를 정면에서 다루는 작가를 보기란 드문 일이다. ‘서양미술’이라는 것은 우리에게 여전히 ‘선진문물’이고, 이런 한계 때문에 현실과 마주하려는 용기는 한국의 ‘서양미술’에서 종종 거세되기 마련이었기 때문이다.

물론 ‘서양미술’ 뿐만 아니라 한국에서 예술 자체는 정치와 무관한 것이어야 한다. 심지어 정치를 다룬다는 민중미술조차도 이제 정치를 직접적으로 표현하는 것은 왠지 ‘촌스럽다’고 여기는 것처럼 보인다. 날것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은 어딘가 ‘예술’이 아닌 것처럼 받아들여진다는 것, 이른바 ‘예술성’으로 승화한 정치야말로 감상 가능한 ‘아름다움’이라는 이런 믿음은 시장의 규범이기도 하다. 이 규범을 정하는 이들은 다름 아닌 수집가들이다. 수집가가 원한다면 민중미술도 훌륭한 ‘사회예술’이 될 수 있고, 미래를 위해 투자할 만한 종목일 수있다.

강영민은 어떤 작가들보다도 이 문제에 민감하다. 그는 수집가들을 위해 작품을 그리지 않는다고 선언한지 오래다. 그러나 어떤 작가든지 공공연하게 수집가들을 위해 작품을 제작한다고 말하진 않는다. 다만 그 시장의 규범을 체화할 뿐이다. 강영민은 이 ‘체화의 복종’을 증오한다. 이번 개인전은 이런 그의 입장을 선명하게 드러낸다는 점에서 놀랍다. 앞서 언급했듯이, 강영민이 관심을 갖는 문제는 ‘정치의 위치’이다. 그가 정치적인 발언을 작품에 담았다는 뜻이 아니다. 오히려 그는 그 정치적 발언들을 행하는 ‘행위 주체’를 보여주고 한다. 그의작품에서 이 ‘행위 주체’는 얼룩으로 나타난다.

예를 들어 <처녀상>을 보자. 이번 개인전의 상징성을 단번에 드러내는 작품이 바로 <처녀상>이다. 이 작품은 수많은 암시를 내포하고 있지만, 가장 전면에 드러내고 있는 것은 종교와 정치의 일치, 다시 말해서 신정일치체제에 대한 패러디이다. 전근대적인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신정일치제제에 대한 열망이 왜 오늘날까지도 위력을 발휘하고 있는지 그는 <처녀상>을 통해 묻고 있다. 물론 이 종교는 더 이상 신을 믿는 신앙의 공동체라고 보기 어렵다. 오히려 그 신을 시장으로 대체하고 화폐가치를 신봉하는 것을 절대적 선으로 여기는 세속주의의 종교성이다. 종교가 아닌 종교성을 문제 삼는다는 점에서 <처녀상>은 반종교적인 입장을 취하는 것이 아니라, 역설적으로 그 종교성을 닮은 모습으로, 아니 더 나아가 그 종교성과 경쟁하는 형상으로 앉아 있다.

강영민의 작품들은 이런 의미에서 재현할 수 있는 것만을 재현하는, 그럼에도 그 재현의 배치를 바꿔서 ‘행위 주체’라는 얼룩을 드러낸다는 점에서 흥미를 자아낸다. <처녀상>은 무엇을 질문하는 것일까. 물론 이 작품은 단순히 장안의 화제였던 ‘소녀상’을 기표만 바꿔서 옮겨 놓은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런 ‘기표 바꿔치기’를 통해 강영민이 묻고 있는 것은 ‘소녀상’이라는 형식의 논리이다. 이 형식의 논리가 바로 이데올로기이다. <처녀상>에 함께 배치되어 있는 노무현과 문재인이라는 정치인의 이미지 역시 이런 의미에서 맥락을 이탈해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렇게 맥락을 벗어남으로써 기표들은 낯선 의미들과 충돌하면서 교환의 구조를 폭로한다.

우리가 ‘소녀상’을 향해 물어야할 질문이 <처녀상>을 통해 현시한다. 그 질문은 “왜 정치의 자리에 종교의 형상이 와 있는가?”이다. 이데올로기는 정치를 봉합하는 세속주의의 종교성이다. 강영민은 이 종교성의 정체를 묻고 있다. ‘소녀상’이 민족주의라는 세속 종교성의 형상이었다면, 박근혜는 극우 정치의 자리에 온 종교성의 형상이었다. 왜 정치의 자리는 이처럼 ‘종교성의 우상’으로 점유 당하는가? 무엇이 이 우상을 그 자리에 세우는가? 정치의 진리는 왜 종교성의 그늘로 숨어드는가? 그는 예술가이기에 이 질문에 답을 제시하고 있지 않다. <처녀상> 이외에 다른 작품들 역시 같은 맥락에서 대답 없는 질문들을 다채롭게 던지고 있다.

박정희와 유신을 대표하는 이미지들은 그의 화폭으로 옮겨지면서 ‘다른 형상들’으로 거듭 난다. 그의 대표 상징인 ‘조는 하트’와 서로 맥락이 다른 이미지들이 모여 충돌한다. 영화 <황해>의 하정우를 박근혜로 바꿔치기 해놓은 작품 역시 대중문화에서 드러나는 재현성과 박근혜의 문제를 겹쳐 놓는 시도이기도 하다. 박근혜의 ‘정치성’은 이처럼 대중문화의 재현성을 통해 거세되어 버렸다. 이 거세의 장치들이 무엇인지 그의 작품들은 내키는 대로 탐색하는 것처럼 보인다.

이처럼 도발적인 내용들을 감추고 있음에도 그의 작품들은 ‘서양미술’이라는 사각형의 틀 내에서 ‘안전’하게 관객들을 유인하고 있다. 이런 의미에서 그의 도발은 밖으로 향한다기보다 안으로 향한다. 전시 공간 정체가 침침한 벙커처럼 꾸며져 있다는 것도 이런 배치의 의미를 가중시켜준다. 작품을 보기 위해 위로 올라가는 것이 아니라 아래로 내려 가야한다는 점에서 이번 전시의 배치는 ‘침잠’이라는 신호를 보낸다. 상승이 아닌 하강. 과거 바로크 미학에서 발견할 수 있는 비애이다.

날렵하고 명랑한 팝아트에 바로크적인 요소가 숨어 있다는 것은 충격인데, 이런 까닭에 전시를 본 관객들은 웃고 즐기기보다, 골똘해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즐거운 반주로 흘러나오는 슬픈 노래 같은 주정이 강영민의 작품들에 드리워져 있다. 앞서 언급했듯이, 강영민이 질문하는 ‘정치의 장소성’ 문제는 결과적으로 정치라는 문제가 위상학적이라는 사실을 전제한다. 정치는 우발적이고, 따라서 결정불가능하다. 절대적인 정치체는 없다. 정치는 끊임없이 흐르는 공백의 방황이다. 공백은 국가로 셈해질 수 없는, 재현 불가능한 것들이다. 이 재현불가능한 것들이 재현을 넘볼 때, ‘정치적인 것’이라는 애매모호한 지점들이 생겨난다.

강영민의 작품들은 바로 이 지점을 노린다고 할 수 있다. 우상이 점유한 정치의 경계선들을 교란시키는 ‘정치적인 것’을 현시하도록 만드는 것이 그의 작업이다. 그 현시는 어떻게 이루어져야할까? 강영민은 ‘위치 이동’을 통해 이를 실현하고자 한다. ‘위치 이동’을 만들어내는‘행위 주체’의 얼룩을 계속 투여함으로써 기존의 욕망 구조는 혼란에 빠진다. 선과 악, 참과 거짓, 미와 추, 좋은 것과 나쁜 것을 나누는 경계들에 숨어 있는 양가성을 그는 찾아내려고 한다. 그의 작품을 보는 순간 해석의 난제에 빠지거나 이해 불가해지는 것은 이 때문이다. 그는 선명한 언어적 환유를 거부한다. 그의 작품은 환유할 수 없다. 교환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그의 작품들은 의사소통에 저항한다.

우리가 알고 있는 의사소통의 기표들은 파편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그의 작품들은 드러낸다. “조국과 민족을 위해” 무엇인가를 해왔던 ‘정치적 결단들’은 실제로 아무런 의미를 갖지 않는다. 이 구호는 공허하다. 그러나 그 공허에 구호의 목적성이 있다. 목적 없는 목적성이라는 점에서 “조국과 민족을 위해”라는 구호는 ‘예술’이라는 ‘세속주의의 종교성’을 획득한다. 강영민은 이것이 바로 우리의 정치를 나누는 배치 구조라고 말하는 것처럼 보인다. 작가로서 그는 이 구조를 뒤틀어서 무엇인가 튀어나오게 하고 싶어하는 것 같다.

그 결과물에 대한 해석은 관객들의 몫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이런 해석의 상대주의에 저항하는 무엇인가를 그의 작품에서 발견할 책임도 관객들에게 있다. 해석은 상대적일 수 있겠지만, 그의 작품은 상대적이지 않다. 그는 분명 싸우려고 한다. 마냥 웃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내면 깊숙이 심각한 정념이 그의 작품들을 수놓고 있다. 그러나 아직은 그 정념의 실체가 무엇인지 명확하진 않다. 그는 방황하고 있다. 이 방황이 끝나는 어디쯤에서 그는 ‘정치의 위치’를 해명할 수 있는 또 하나의 실마리를 찾지 않을까? 다음 전시에서 그는 이 문제를 더집요하게 몰아붙인 결과물들을 내어놓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그래서 그의 작품들이 걸려 있는 전시장은 지옥으로 끝없이 내려가던 단테의 길을 닮아 있다.

이택광 문화비평가, 경희대 교수

*일베 사태: 2013년 4월 강영민이 기획한 <박정희와 팝아트투어>가 박정희 전 대통령 내외를 모독했다고 일간베스트회원들이 공격한 사건으로 투어를 함께 떠난 팝아티스트 낸시랭이 종북좌파로 몰리는 등 논란이 됐다 . 이 후 강영민과 낸시랭은 <나의 일베전투기>라는 전국 순회 강연을 개최했다.